사도행전 15:1-41

15  유대에서 내려온 어떤 사람들이 형제들에게 “모세의 관습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 두 사람과 그들 사이에 심한 의견 충돌과 논쟁이 있었다. 형제들은 그 문제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와 다른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올라가도록+ 마련했다.  그들은 회중의 전송을 받은 후에 페니키아와+ 사마리아를 지나가면서, 이방 사람들이 개종한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여 모든 형제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회중과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환영을 받고, 하느님께서 그들을 통해 하신 많은 일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바리새파 중에서 신자가 된 몇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할례를 베풀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명령해야 합니다” 하고 말했다.+  그래서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 문제를 검토하려고 함께 모였다.  열띤 토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서 그들에게 말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하느님께서는 일찍이 여러분 가운데서 나를 선택하셔서 내 입을 통해 이방 사람들이 좋은 소식의 말씀을 듣고 믿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셔서+ 증거를 제시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와 그들 사이에 조금도 차별을 두지 않으시고+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셨습니다.+ 10  그런데 이제 여러분은 왜 우리의 조상들도 우리도 감당할 수 없었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지워 하느님을 시험하고 있습니까? 11  우리는 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 예수의 과분한 친절을+ 통해 구원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12  그러자 모든 사람이 잠잠해졌다. 그리고 그들은 바나바와 바울이 하느님께서 자기들을 통해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행하신 많은 표징과 놀라운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13  그들이 말을 마친 후에 야고보가+ 말했다. “형제 여러분,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14  하느님께서 처음으로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자신의 이름을 위한 백성을 모으시려고+ 어떻게 그들에게 주의를 돌리셨는지 시므온이+ 자세히 이야기했습니다. 15  이것은 예언서의 말씀과도 일치합니다. 이렇게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16  ‘그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그 폐허를 재건하여 복구할 것이다. 17  그것은 남은 자들이 내 이름으로 불리는 모든 이방 사람들과 함께 여호와를 진지하게 찾게 하려는 것이다. 이 일들을 행하고 있는 여호와가 말한다.+ 18  이 일들은 예로부터 알려진 일이다.’+ 19  그러므로 내 판단으로는, 하느님께 돌아오는 이방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말고+ 20  그들에게 편지를 써서, 우상에 의해 더럽혀진 것과+ 성적 부도덕과+ 목 졸라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21  옛적부터* 도시마다 모세에 대해 전파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안식일마다 모세의 글이 회당에서 낭독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22  그때에 사도들과 장로들과 온 회중은 그들 가운데서 선택된 사람들을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티오크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형제들 가운데서 인도하는 사람들인 바사바라고 하는 유다와 실라를+ 보냈다. 23  그들은 그 사람들 편에 이러한 편지를 써 보냈다. “여러분의 형제들인 사도들과 장로들이 안티오크와+ 시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 출신 형제들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24  우리가 아무 지시도 하지 않았는데,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가서 말로 여러분을 혼란스럽게 하고+ 여러분을 어지럽히려 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25  우리는 사람들을 선택하여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여러분에게 보내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습니다. 26  바나바와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자기들의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입니다.+ 27  우리가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그들도 이 편지의 내용을 말로 전할 것입니다.+ 28  성령과+ 우리는 꼭 필요한 이런 것들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29  곧 우상에게 바친 것과+ 피와+ 목 졸라 죽인 것과+ 성적 부도덕을+ 계속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로부터 주의 깊이 떠나 있으면 여러분은 잘될 것입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30  그들은 작별을 하고 안티오크로 내려가서 형제들을 다 모아 놓고 편지를 전해 주었다. 31  형제들은 그것을 읽고 그 격려에 대해 기뻐했다. 32  유다와 실라는 예언자이기도 했으므로, 많은 연설로 형제들을 격려하고 강하게 했다.+ 33  그들은 거기서 얼마 동안 지낸 뒤에, 형제들에게서 평안히 가라는 인사를 받고 자기들을 보낸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34  —— 35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안티오크에 머물면서 다른 많은 사람과 함께 여호와의 말씀의 좋은 소식을 가르치고 전했다. 36  얼마 후에 바울이 바나바에게 말했다. “자,* 우리가 여호와의 말씀을 널리 전한 모든 도시에 있는 형제들을 다시 방문해서 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37  바나바는 마가라고+ 하는 요한을 데려가기로 작정했다. 38  그러나 바울은 마가가 팜필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데려가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았다.+ 39  그래서 두 사람은 이 일 때문에 감정이 격해져서 서로 헤어졌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갔다. 40  바울은 실라를 선택하여 떠났는데, 형제들은 바울을 여호와의 과분한 친절에 맡긴 뒤에 떠나보냈다.+ 41  그는 시리아와 길리기아를 두루 다니며 회중들을 강하게 했다.

각주

또는 “옛 세대들로부터”.
달리 번역하면 “반드시”.

연구 노트

열띤 토론: 또는 “많은 논쟁”.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는 “찾다; 구하다”를 의미하는 동사 제테오와 어근이 같으며, “찾는 일; 구하는 일; 질문하는 일”을 의미한다. (「왕국 행간역」[Kingdom Interlinear]) 이 점을 볼 때 사도들과 장로들은 질문을 하고 주의 깊이 조사하면서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틀림없이 각자의 생각을 거리낌 없이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장로들: 직역하면 “연로자들”. 성경에서 그리스어 프레스비테로스는 지역 사회나 나라에서 권위와 책임을 가진 지위에 있는 사람을 주로 가리킨다. 이 단어가 눅 15:25에 나오는 “큰아들”과 행 2:17에 나오는 “노인”의 경우처럼 나이와 관련이 있을 때도 있지만, 반드시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 구절에서는 유대 민족의 지도자들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흔히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함께 언급된다. 산헤드린은 이 세 부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었다.—마 21:23; 26:3, 47, 57; 27:1, 41; 28:12. 용어 설명 “장로; 연로자” 참조.

장로들: 직역하면 “연로자들”. 성경에서 그리스어 프레스비테로스는 실제로 나이가 많은 사람을 가리킬 때도 있지만, 지역 사회나 나라에서 권위와 책임을 가진 지위에 있는 사람을 주로 가리킨다. (마 16:21 연구 노트 참조) 고대 이스라엘 나라에서 장로들은 지역 사회만이 아니라 (신 25:7-9; 수 20:4; 룻 4:1-12) 나라 전체를 위해서도 (삿 21:16; 삼상 4:3; 8:4; 왕상 20:7) 인도하고 지침을 베풀고 시행하는 책임을 맡았다. 그리스어 프레스비테로스가 그리스도인 회중과 관련하여 사용된 것은 이 경우가 처음이다. 육적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마찬가지로 영적 이스라엘의 장로들도 회중을 인도할 책임이 있었다. 이 구절에 따르면 구호 기금은 장로들에게 전달되었다. 장로들은 이 기금을 유대의 회중들에 나누어 주는 일을 감독했다.

문제: 또는 “논쟁”. 그리스어 제테마는 논란이나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문제를 가리키는 데 자주 쓰인다. 이 단어는 “찾다; 구하다”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제테오와 어근이 같다.—행 15:7 연구 노트 참조.

장로들: 직역하면 “연로자들”. 여기서 그리스어 프레스비테로스는 초기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책임을 가진 지위에 있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바울과 바나바와 시리아 안티오크의 몇몇 형제들은 할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갔다. 여기서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 회중의 장로들이 언급되어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육적 이스라엘에서 일부 장로들이 나라 전체를 위해 일했던 것처럼, 이 장로들도 사도들과 함께 1세기 그리스도인 회중 전체를 위해 중앙장로회로 일했다. 이 점을 볼 때 처음에는 중앙장로회가 열두 사도만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후에 그 수가 늘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행 1:21, 22, 26. 마 16:21; 행 11:30 연구 노트 참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십시오: 요한의 말을 듣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이나 태도가 바뀌었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그 점을 행동으로 나타내야 한다는 의미이다.—눅 3:8; 행 26:20; 마 3:2, 11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회개” 참조.

회개하십시오: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단어는 문자적으로 “생각을 바꾸다”로 번역될 수 있으며, 견해나 태도나 목적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이 문맥에서 “회개”한다는 것은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과 가까운 관계를 맺기 위해 변화하는 것을 뜻한다.—마 3:8, 11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회개” 참조.

회개하고 돌이켜: “회개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메타노에오는 문자적으로 “생각을 바꾸다”로 번역될 수 있으며, 견해나 태도나 목적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이 문맥에서 회개에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하는 것이 포함된다. 진정으로 회개하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된 행로에 대해 마음 깊이 후회하고 죄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한다. (고후 7:10, 11. 마 3:2, 8 연구 노트 참조) 또한 진정으로 회개하는 사람은 “돌이킨다.” 다시 말해 자신의 잘못된 행로를 버리고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로를 추구한다. “돌이키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동사(히브리어 슈브, 그리스어 스트레포; 에피스트레포)는 모두 문자적으로 “돌아오다; 돌아서다; 돌이키다”를 의미한다. (창 18:10; 50:14; 룻 1:6; 행 15:36) 하지만 이 단어가 영적인 의미에서 긍정적인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 잘못된 행로에서 돌아서서 하느님께 향하는 것을 가리킬 수 있다.—왕상 8:33; 겔 33:11. 행 15:3; 26:20 연구 노트 참조.

회개하고: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는 문자적으로 “생각을 바꾸다”로 번역될 수 있으며, 견해나 태도나 목적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이 구절에서는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오라고 권고한다. 따라서 여기서 회개는 하느님과의 관계와 관련이 있다. 진정으로 회개하려면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생각이나 태도가 실제로 바뀌었다는 증거를 행동으로 제시해야 한다.—마 3:2, 8; 눅 3:8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회개” 참조.

개종한 일: 직역하면 “돌아선 일”. 여기 사용된 그리스어 에피스트로페는 “돌아오다; 돌아서다; 돌이키다”를 의미하는 동사에서 나온 단어이다. (요 12:40; 21:20; 행 15:36) 이 단어가 영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 우상과 거짓 신들에게서 돌아서서 참하느님께 향하거나 그분에게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이 동사는 행 3:19; 14:15; 15:19; 26:18, 20; 고후 3:16에 나온다.) 살전 1:9에서는 이 동사가 “우상들을 버리고 하느님께로 돌아서서”라는 표현 가운데 사용되었다. 그처럼 돌아서려면 회개가 선행되어야 한다.—마 3:2, 8; 행 3:19; 26:20 연구 노트 참조.

바리새파 중에서 신자가 된 몇 사람: 이 구절에서는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 일부 신자들에 대해 말하면서 그들의 바리새파 배경을 여전히 함께 언급한다.—행 23:6 연구 노트 비교.

나는 바리새인이며: 바울의 말을 듣는 사람들 중에는 바울을 아는 사람들도 있었다. (행 22:5) 바울이 자신을 바리새인의 아들이라고 불렀을 때, 산헤드린에 있던 바리새인들은 그가 자신들과 공통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임을 이해했을 것이다. 그들은 바울이 자신의 신분을 숨기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열심 있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문맥에서 바울은 상대적인 의미로 자신이 바리새인이라고 말했을 수도 있다. 바울은 자신이 바리새인들과 마찬가지로 부활을 믿기 때문에 사두개인보다는 바리새인에 가깝다고 밝힌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그는 그 자리에 있던 바리새인들과 자신 사이의 공통점을 이끌어 냈다. 그는 논쟁이 될 만한 이 문제를 부각시킴으로 산헤드린의 일부 성원들이 자신의 주장에 동감하게 만들려고 했던 것 같으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행 23:7-9) 이 구절(행 23:6)에 나오는 바울의 말은 후에 그가 아그리파왕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면서 자신에 대해 한 말과도 일치한다. (행 26:5) 나중에 로마에서 빌립보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할 때도 그는 자신이 이전에 바리새인이었다고 언급했다. (빌 3:5) 유의해 볼 만한 점으로, 행 15:5에서는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 일부 신자들에 대해 말하면서 그들의 바리새파 배경을 여전히 함께 언급한다.—행 15:5 연구 노트 참조.

열띤 토론: 또는 “많은 논쟁”.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는 “찾다; 구하다”를 의미하는 동사 제테오와 어근이 같으며, “찾는 일; 구하는 일; 질문하는 일”을 의미한다. (「왕국 행간역」[Kingdom Interlinear]) 이 점을 볼 때 사도들과 장로들은 질문을 하고 주의 깊이 조사하면서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틀림없이 각자의 생각을 거리낌 없이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놀라운 일: 또는 “전조”.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그리스어 테라스는 항상 세메이온(“표징”)과 함께 사용되며, 그 경우 두 단어 모두 복수형으로 사용된다. (마 24:24; 요 4:48; 행 7:36; 14:3; 15:12; 고후 12:12) 테라스는 기본적으로 외경심이나 경탄을 자아내는 것을 가리킨다. 이 단어가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전조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한 경우에는 연구 노트에 “전조”라는 대체 표현이 나온다.

놀라운 일: 또는 “전조”.—행 2:19 연구 노트 참조.

야고보: 예수의 이부동생. 행 12:17(연구 노트 참조)과 갈 1:19에 나오는 야고보와 동일 인물일 것이며 야고보서를 기록했을 것이다.—약 1:1.

야고보: 예수의 이부동생인 야고보를 가리키는 것 같다. 마리아의 친아들 네 명 즉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가운데 첫 번째로 이름이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그는 예수 다음으로 나이가 많았을 것이다. (마 13:55; 막 6:3; 요 7:5) 야고보는 기원 33년 오순절에 이스라엘 이외의 지역에서 예루살렘을 찾아온 유대인 수천 명이 좋은 소식에 반응을 보여 침례받는 것을 직접 보았다. (행 1:14; 2:1, 41) 이 구절에서 베드로가 제자들에게 ‘야고보에게 알리라’고 말한 것을 볼 때 야고보가 예루살렘 회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야고보는 행 15:13; 21:18; 고전 15:7; 갈 1:19(“주의 형제”라는 표현과 함께 언급됨); 2:9, 12에 나오는 야고보와 동일 인물일 것이며 야고보서를 기록했을 것이다.—약 1:1; 유 1.

야고보: 예수의 이부동생인 야고보를 가리키는 것 같다. 이 야고보는 행 12:17에 나오는 야고보와 동일 인물일 것이다. (마 13:55; 행 12:17 연구 노트 참조)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이 할례 문제를 다룰 때 야고보가 그 모임을 주재한 것 같다. (행 15:1, 2) 바울은 아마도 그 일을 염두에 두고 야고보와 게바(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 회중에서 “기둥같이 여겨지는 사람들”이라고 언급했을 것이다.—갈 2:1-9.

자신의 이름을 위한 백성: 이 표현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여호와께서 한 백성을 자신의 특별한 재산으로 선택하셨다고 알려 주는 내용을 언급한 것일 수 있다. (출 19:5; 신 7:6; 14:2; 26:18, 19) 여호와의 이름을 지닌 새로운 백성인 “하느님의 이스라엘” 즉 영적 이스라엘은 이제 비유대인 신자들도 포함하게 되었다. (갈 6:16; 롬 11:25, 26ㄱ; 계 14:1) 그들은 자신들이 대표하는 분을 찬양하고 그분의 이름에 공개적으로 영광을 돌려야 했다. (벧전 2:9, 10) 육적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영적 이스라엘의 성원들도 여호와께서 “내가 나를 위해, 나에 대한 찬양을 선포하도록 지은 백성”이라고 부르신 사람들이었다. (사 43:21) 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당시 사람들이 숭배하던 모든 신이 거짓 신이라고 폭로하고 여호와께서 유일한 참하느님이심을 담대하게 선포했다.—살전 1:9.

시므온: 시몬 베드로를 가리킨다. 성경에는 베드로의 그리스어 이름 두 가지가 나오는데 시므온과 시몬이다. 이 구절에서 히브리어 이름(시므온)을 그리스어로 표기한 형태인 시므온이 사용된 것을 볼 때, 그 모임에서 히브리어가 사용되었을 수 있다. 성경에서 사도 베드로를 시므온이라고 언급한 곳은 이 구절뿐이다.—마 10:2 연구 노트 참조.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 성경에서 베드로의 이름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방식으로 언급된다. (1) “시므온”, 히브리어 이름을 그리스어 형태로 표기한 것이다. (2) “시몬”. 그리스어 이름. (시므온과 시몬은 둘 다 “듣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동사에서 나왔다.) (3) “베드로”. (“바위”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이름으로, 성경에서 그에게만 붙여진 이름이다.) (4) “게바”. 베드로라는 이름의 셈어 형태이다. (욥 30:6과 렘 4:29에 나오는 히브리어 케핌[바위]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5) 두 이름의 결합형인 “시몬 베드로”.—행 15:14; 요 1:42; 마 16:16.

예언서의 말씀: 시므온 즉 시몬 베드로의 이야기와 (행 15:7-11) 바나바와 바울이 말한 증거를 듣자 (행 15:12) 야고보는 토의 중인 문제와 관련이 있는 성구가 떠올랐을 것이다. (요 14:26) 야고보는 지금까지 그들이 말한 내용이 “예언서의 말씀과도 일치한다”고 한 뒤에, 암 9:11, 12을 인용했다. 아모스서는 히브리어 성경 가운데 일반적으로 “예언서”라고 불리는 부분에 포함되어 있었다.—마 22:40; 행 15:16-18. 눅 24:44 연구 노트 참조.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 여기서 예수께서는 당시 유대인들이 잘 알고 있고 그들이 사용하던 방법대로 영감받은 히브리어 성경 전체를 분류하신 것 같다. “율법”(히브리어 토라)은 창세기부터 신명기에 이르는 성경 책들을 가리킨다. “예언서”(히브리어 네비임)는 “전기 예언서”라 불리는 책들(여호수아부터 열왕기까지)을 포함한, 히브리어 성경의 예언서들을 가리킨다. “시편”은 셋째 부분을 지칭하는 말로서, 히브리어 성경의 나머지 책들을 가리키며 “성문서”(히브리어 케투빔)라고 불린다. 이 부분을 “시편”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시편이 이 셋째 부분의 첫 번째 책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히브리어 성경을 부르는 이름인 “타나크”는 각 부분을 지칭하는 이름의 맨 앞 글자를 따서 만든 것이다. 예수께서 이 세 이름을 사용하신 것을 보면, 그분이 지상에 계실 때 히브리어 성경의 정경이 이미 확립되어 있었으며, 그분이 정경을 인정하셨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다윗의 ··· 천막: 또는 “다윗의 초막(거처)”.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왕국이 “영원히 견고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삼하 7:12-16) “다윗의 ··· 천막” 즉 그의 왕가는 시드기야왕이 폐위되었을 때 무너졌다. (겔 21:27) 그때 이후로는 다윗 가계에서 나온 왕이 지상의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왕좌”에 앉아 다스리는 일이 없었다. (대상 29:23)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후손인 예수를 영원한 왕으로 삼아 상징적인 ‘다윗의 천막’을 재건하실 것이었다. (행 2:29-36) 야고보는 아모스가 예언한 이 재건하는 일(다윗 가계의 왕권을 다시 세우는 일)에 유대인과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의 제자들(왕국의 상속자들)을 모으는 일이 포함된다고 지적했다.—암 9:11, 12.

남은 자들이 ··· 여호와를 진지하게 찾게 하려는 것이다: 행 15:15 연구 노트에서 알려 주듯이, 야고보는 암 9:11, 12의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그런데 야고보가 사용한 표현은 현존하는 히브리어 본문의 표현과 차이가 있다. 일부 사람들은 그처럼 차이가 나는 이유가 야고보가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칠십인역」에서 인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야고보가 베드로를 지칭할 때 시므온(히브리어 이름의 그리스어 형태)이라고 한 것을 볼 때 당시 모임에서 히브리어가 사용되었을 수 있다. (행 15:14) 만약 그렇다면 야고보가 히브리어로 인용한 표현을 누가가 「칠십인역」의 표현을 사용하여 기록했기 때문에 그처럼 차이가 나는 것일 수도 있다. 누가와 야고보와 다른 성경 필자들은 히브리어 성경을 인용할 때 「칠십인역」의 표현을 사용했다. 그처럼 「칠십인역」에서 인용한 구절들 가운데는 현존하는 히브리어 본문과 차이가 있는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성경 필자들이 「칠십인역」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셔서 그 인용문들이 영감받은 기록의 일부가 되게 하셨다. (딤후 3:16) 이 구절에 인용된 암 9:12의 경우 유의할 만한 점은 「칠십인역」에는 “남은 자들”이라고 되어 있는 부분이 현존하는 히브리어 사본들에는 “에돔의 남은 것”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부 사람들은 그러한 차이가 생긴 이유가 “자들”에 해당하는 고대 히브리어 단어와 “에돔”에 해당하는 단어가 모양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찾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와 “차지하다”에 해당하는 단어도 모양이 비슷하다. 「칠십인역」의 번역자들이 암 9:12을 번역할 때 기초로 삼은 고대 히브리어 본문이 현존하는 히브리어 본문과는 다른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그 점을 확실히 알 수는 없다. 「칠십인역」과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의 표현에 차이가 있는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둘 다 야고보가 한 말의 기본적인 취지를 담고 있다. 아모스가 이방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것이다.

내 이름으로 불리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은 그들이 그분의 백성이라는 의미였다. (신 28:10; 대하 7:14; 사 43:7; 63:19; 단 9:19) 여호와께서는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도 자신의 이름을 두셨는데, 이것은 그분께 드리는 숭배의 중심지로 그곳을 승인하신다는 의미였다.—왕하 21:4, 7.

모든 이방 사람들과 함께: 비유대인들과 함께한다는 의미이다. 할례를 받은 비유대인은 더 이상 이방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고 “그 땅의 본토인과 같아졌다.” 다시 말해 유대인으로 여겨졌다. (출 12:48, 49) 더 8:17에서는 에스더 시대에 많은 이방 사람들이 “유대인으로 자처했다”고 알려 준다. 유의할 만한 점으로, 「칠십인역」더 8:17에는 이 이방 사람들이 “할례를 받고 유대인이 되었다”고 되어 있다. 암 9:11, 12의 예언을 인용한 이 구절(행 15:17)의 표현에 따르면 “모든 이방 사람들”(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집(유대인들과 할례받은 개종자들)의 “남은 자들”과 함께할 것이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백성이 될 것이었다. 이 예언을 근거로 제자들은 할례받지 않은 이방 사람들이 하느님께 받아들여지기 위해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점을 분별했다.

여호와: 행 15:14에서 야고보는 시므온이 ‘하느님께서 어떻게 이방 사람들에게 주의를 돌리셨는지’ 이야기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19절에서 “하느님께 돌아오는 이방 사람들”을 언급한다. 이 구절(행 15:17)에서 야고보는 암 9:11, 12을 인용한 것이다. 암 9:11, 12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여호와의 말이다”라는 표현 가운데 하느님의 이름이 한 번 나온다. 하지만 행 15:17에는 그리스어 키리오스(주)가 두 번 나오며 둘 다 여호와를 가리킨다. 이 구절의 문맥과 히브리어 성경과의 연관성과 「칠십인역」과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키리오스가 사용된 방식을 볼 때, 이 구절에서 키리오스가 나오는 두 부분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할 만한 타당한 이유들이 있다.—부록 다1다3 소개; 행 15:17 참조.

이 일들을 행하고 있는 ··· [18절] 이 일들은 예로부터 알려진 일이다: 그리스어 본문의 이 부분을 다르게 이해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이 일들을 행하고 있는 여호와가 말한다. 이 일들은 예로부터 알려진 일이다”가 아니라 “예로부터 이 일들을 알려 온 여호와가 말한다”가 된다.

여호와가 말한다: 이 구절에서 인용한 암 9:12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네 개의 히브리어 자음으로 표기된 하느님의 이름(יהוה, 로마자로 음역하면 YHWH)이 나온다.—부록 다 참조.

예언서의 말씀: 시므온 즉 시몬 베드로의 이야기와 (행 15:7-11) 바나바와 바울이 말한 증거를 듣자 (행 15:12) 야고보는 토의 중인 문제와 관련이 있는 성구가 떠올랐을 것이다. (요 14:26) 야고보는 지금까지 그들이 말한 내용이 “예언서의 말씀과도 일치한다”고 한 뒤에, 암 9:11, 12을 인용했다. 아모스서는 히브리어 성경 가운데 일반적으로 “예언서”라고 불리는 부분에 포함되어 있었다.—마 22:40; 행 15:16-18. 눅 24:44 연구 노트 참조.

내 판단으로는: 또는 “내 의견으로는; 내가 내린 결론은”. 모임의 사회자였던 것으로 보이는 야고보가 사용한 이 그리스어 표현을 직역하면 “내가 판결하는데”가 된다. 야고보가 그러한 표현을 사용했다고 해서 그 모임에 참석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그때까지 제시된 증거와 그 문제에 대해 성경에서 알려 주는 점을 근거로 한 가지 제안을 한 것이다. 한 사전에서는 여기 사용된 그리스어 동사가 이 문맥에서 “다양한 요인을 고려하여 판단을 내리다”를 의미한다고 알려 준다. 따라서 이 문맥에서 야고보가 사용한 동사는 사법적인 판결을 내린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가 방금 인용한 성구에서 내린 결론을 바탕으로 의견을 제시한다는 의미였다.

성적 부도덕: 그리스어 포르네이아는 성경에서 불법으로 규정하는 모든 성행위를 두루 일컫는 용어이다. 여기에는 간음, 매춘, 미혼끼리의 성관계, 동성애, 수간이 포함된다.—용어 설명 참조.

목 졸라 죽인 것: 또는 “피를 빼지 않고 죽인 것”. 여기서 멀리하라고 한 “목 졸라 죽인 것”에는 자연사한 동물이나 다른 동물에게 상처를 입고 죽은 동물도 포함될 것이다. 그러한 경우에는 피가 제대로 빠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출 22:31; 레 17:15; 신 14:21.

성경을 읽으려고 일어서셨다: 학자들에 따르면 회당 예배를 묘사한, 현존하는 기록 가운데 누가복음의 이 부분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유대인의 전승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회당 예배는 사람들이 회당 건물 안으로 들어오면서 개인적으로 드리는 기도로 시작되었다. 이어서 신 6:4-911:13-21의 말씀을 암송했다. 그 후 공개 기도를 드린 다음, 계획표에 따라 모세 오경의 일부분을 낭독했다. 행 15:21에서는 기원 1세기에 “안식일마다” 그처럼 모세의 글이 낭독되었다고 알려 준다. 그다음에는 예언서들을 낭독하고 그 내용에 근거한 교훈점을 해설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 구절 즉 눅 4:16에서는 바로 이 일을 언급하는 것 같다. 낭독자는 대개 일어서서 낭독을 했으며, 예언서 중 어떤 부분을 읽을지 선택할 어느 정도의 재량이 있었을 것이다.—행 13:15 연구 노트 참조.

율법과 예언서의 공개 낭독: 기원 1세기에는 “안식일마다” 이러한 공개 낭독이 행해졌다. (행 15:21) 회당에서 드리는 숭배의 한 부분은 셰마 즉 유대교 신앙 고백문에 해당하는 것을 암송하는 일이었다. (신 6:4-9; 11:13-21) 그 고백문의 첫 구절은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이여, 잘 들으십시오[셰마]. 우리 하느님 여호와는 한 분인 여호와이십니다.” 그 구절의 첫 히브리어 단어에서 셰마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신 6:4)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토라 즉 모세 오경을 낭독하는 일이었다. 많은 회당에서는 1년 동안 율법 전체를 읽었으며, 3년에 걸쳐 읽는 회당들도 있었다. 또한 예언서의 일부를 읽고 해설하는 일도 있었다. 공개 낭독이 끝나면 강연이 있었다. 피시디아 안티오크의 회당에서 공개 낭독이 있은 뒤에 바울은 모인 사람들에게 격려의 말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눅 4:16 연구 노트 참조.

성경을 읽으려고 일어서셨다: 학자들에 따르면 회당 예배를 묘사한, 현존하는 기록 가운데 누가복음의 이 부분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유대인의 전승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회당 예배는 사람들이 회당 건물 안으로 들어오면서 개인적으로 드리는 기도로 시작되었다. 이어서 신 6:4-911:13-21의 말씀을 암송했다. 그 후 공개 기도를 드린 다음, 계획표에 따라 모세 오경의 일부분을 낭독했다. 행 15:21에서는 기원 1세기에 “안식일마다” 그처럼 모세의 글이 낭독되었다고 알려 준다. 그다음에는 예언서들을 낭독하고 그 내용에 근거한 교훈점을 해설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 구절 즉 눅 4:16에서는 바로 이 일을 언급하는 것 같다. 낭독자는 대개 일어서서 낭독을 했으며, 예언서 중 어떤 부분을 읽을지 선택할 어느 정도의 재량이 있었을 것이다.—행 13:15 연구 노트 참조.

율법과 예언서의 공개 낭독: 기원 1세기에는 “안식일마다” 이러한 공개 낭독이 행해졌다. (행 15:21) 회당에서 드리는 숭배의 한 부분은 셰마 즉 유대교 신앙 고백문에 해당하는 것을 암송하는 일이었다. (신 6:4-9; 11:13-21) 그 고백문의 첫 구절은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이여, 잘 들으십시오[셰마]. 우리 하느님 여호와는 한 분인 여호와이십니다.” 그 구절의 첫 히브리어 단어에서 셰마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신 6:4)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토라 즉 모세 오경을 낭독하는 일이었다. 많은 회당에서는 1년 동안 율법 전체를 읽었으며, 3년에 걸쳐 읽는 회당들도 있었다. 또한 예언서의 일부를 읽고 해설하는 일도 있었다. 공개 낭독이 끝나면 강연이 있었다. 피시디아 안티오크의 회당에서 공개 낭독이 있은 뒤에 바울은 모인 사람들에게 격려의 말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눅 4:16 연구 노트 참조.

모세: 여기서 야고보가 언급한 모세의 글에는 율법의 규정들뿐 아니라 율법이 주어지기 이전에 하느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대하신 기록과 자신의 뜻에 대해 알려 주신 내용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창세기에는 피의 사용, 간음, 우상 숭배에 관한 하느님의 견해가 분명히 나타나 있다. (창 9:3, 4; 20:2-9; 35:2, 4) 여호와께서는 그러한 기록을 통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관계없이 모든 인류가 따라야 하는 원칙들을 밝혀 주셨다. 행 15:19, 20에 기록된 야고보의 제안대로 한다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않게 될 것이었다. 모세 율법의 많은 규정들을 지키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제안대로 하는 것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양심에 따른 견해를 존중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들은 안식일마다 모세의 글이 회당에서 낭독되는 것을 오랫동안 들어 온 사람들이었다. (눅 4:16; 행 13:15 연구 노트 참조) 야고보의 제안대로 한다면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연합이 강화될 것이었다.

안식일마다 모세의 글이 회당에서 낭독되고: 눅 4:16; 행 13:15 연구 노트 참조.

장로들: 직역하면 “연로자들”. 여기서 그리스어 프레스비테로스는 초기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책임을 가진 지위에 있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바울과 바나바와 시리아 안티오크의 몇몇 형제들은 할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갔다. 여기서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 회중의 장로들이 언급되어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육적 이스라엘에서 일부 장로들이 나라 전체를 위해 일했던 것처럼, 이 장로들도 사도들과 함께 1세기 그리스도인 회중 전체를 위해 중앙장로회로 일했다. 이 점을 볼 때 처음에는 중앙장로회가 열두 사도만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후에 그 수가 늘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행 1:21, 22, 26. 마 16:21; 행 11:30 연구 노트 참조.

사도들과 장로들: 행 15:2 연구 노트 참조.

안부를 전합니다!: 그리스어 카이로의 문자적인 의미는 “기뻐하다”이다. 여기서 이 단어는 인사말로 사용되었으며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회중들에 보낸 할례 문제에 관한 이 편지의 서두 부분은 고대의 일반적인 편지 형식을 따르고 있다. 먼저 편지를 쓰는 사람이 언급되고 그다음에는 편지를 받는 사람이 언급되며 이어서 일반적인 인사말이 나온다. (행 23:26 연구 노트 참조) 1세기 중앙장로회가 보낸 이 편지에서처럼 카이로를 인사말로 사용한 편지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들어 있는 영감받은 편지 가운데 야고보서밖에 없다. (약 1:1) 제자 야고보는 중앙장로회가 보낸 그 편지를 작성하는 데 참여한 사람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야고보서의 필자인 야고보가 행 15장에 기록된 모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야고보와 동일한 인물이라는 점을 뒷받침한다.

클라우디우스 리시아스가 총독 펠릭스 각하께 인사드립니다: 고대에는 편지를 쓸 때 일반적으로 이러한 형식으로 시작했다. 먼저 편지를 쓰는 사람을 언급하고 그다음에는 편지를 받는 사람을 언급했으며 이어서 일반적인 인사말을 썼다. 인사말에는 문자적으로 “기뻐하다”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카이로가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성경 이외의 파피루스 서한들에 자주 나온다. 이 문맥에서는 이 그리스어 단어를 “인사드립니다”로 번역할 수 있다. 비슷한 형식으로 편지를 시작한 예를 행 15:23과 약 1:1에서도 볼 수 있다.—행 15:23 연구 노트 참조.

여러분을 어지럽히려: 또는 “여러분을 동요하게 하려”. 여기서 “여러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를 직역하면 “여러분의 영혼”이다. 그리스어 프시케는 「신세계역」 이전 번역판에서 “영혼”으로 번역되었는데, 여기서는 인간 그 자체를 가리키며 따라서 “여러분”으로 번역되었다.—용어 설명 “영혼” 참조.

만장일치로: 직역하면 “같은 정신으로”. 그리스어 호모티마돈은 사도행전에 여러 번 나오며,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던 특별한 연합을 묘사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이 단어는 행 1:14; 2:46; 4:24에서 “한마음으로”로 번역되었다.

자기들의 목숨을 내놓은: 종종 “영혼”으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프시케는 이 구절에서 “목숨”으로 번역되었다. 프시케는 사람 그 자체나 사람의 생명을 가리킬 수 있다. (용어 설명 “영혼” 참조) “자기들의 목숨을 내놓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표현은 “생명(영혼)의 위험을 무릅쓰다; 생명(자신)을 바치다”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피[를] 계속 멀리하라는: 궁극적으로 이 규정은 과거에 하느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따라서 온 인류에게 주신 피를 먹지 말라는 명령에 근거한 것이다. (창 9:4-6) 8세기가 지난 후에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에 그 명령을 포함시키셨다. (레 17:13-16) 그로부터 15세기 뒤에, 이 구절에서 알려 주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그 명령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그리스도인 회중에 밝혀 주셨다. 하느님께서는 피를 멀리하는 것을 우상 숭배나 성적 부도덕을 멀리하는 것만큼 중요하게 보신다.

목 졸라 죽인 것: 행 15:20 연구 노트 참조.

성적 부도덕: 행 15:20 연구 노트 참조.

계속 멀리하라는: 계속 멀리해야 하는 것들에는 이 구절에 언급된 모든 것이 포함된다. 그리스도인은 우상 숭배와 성적 부도덕과 목 졸라 죽인, 피를 제대로 빼지 않은 동물의 고기를 먹는 것을 피해야 했다. 피를 멀리한다는 것은 단순히 피를 먹지 않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피를 오용하는 것을 피하여 피의 신성함을 존중한다는 의미이다.—레 17:11, 14; 신 12:23.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또는 “안녕히 계십시오.” 여기 사용된 그리스어 표현은 당시에 편지에서 흔히 사용되던 문구였다. 이러한 표현을 사용했다고 해서 앞서 언급한 규정이 건강을 위한 지침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다시 말해 ‘이러한 것들을 멀리하면 더 건강해질 것이다’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이 그리스어 표현은 편지를 마치면서 상대방이 건강하고 활력을 누리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는 말이었다. 이와 비슷한 히브리어 표현으로 샬롬이 있는데, 그 표현은 상대방에게 “평화”가 있기를 바란다는 의미이다. (출 4:18; 삿 18:6; 19:20; 삼상 1:17) 실제로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현대 히브리어로 옮긴 한 번역판(부록 다4에 J22로 표기됨)은 이 그리스어 표현을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라는 뜻의 샬롬 라켐으로 번역한다.

성적 부도덕: 그리스어 포르네이아는 성경에서 불법으로 규정하는 모든 성행위를 두루 일컫는 용어이다. 여기에는 간음, 매춘, 미혼끼리의 성관계, 동성애, 수간이 포함된다.—용어 설명 참조.

목 졸라 죽인 것: 또는 “피를 빼지 않고 죽인 것”. 여기서 멀리하라고 한 “목 졸라 죽인 것”에는 자연사한 동물이나 다른 동물에게 상처를 입고 죽은 동물도 포함될 것이다. 그러한 경우에는 피가 제대로 빠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출 22:31; 레 17:15; 신 14:21.

후기에 만들어진 일부 그리스어 사본들과 그리스어를 다른 언어로 옮긴 몇몇 고대 번역본들에는 표현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이 구절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실라에게는 거기에 좀 더 머무르는 것이 좋아 보였다. 하지만 유다는 혼자 예루살렘으로 떠났다.” 그러나 이 내용은 가장 오래되고 신뢰할 만한 사본들에는 나오지 않으므로 사도행전의 원문의 일부가 아니다. 이 내용은 행 15:40을 설명하기 위한 난외주였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사본들의 본문에 추가된 것 같다.—부록 가3 참조.

여호와의 말씀: 행 8:25 연구 노트부록 다3 소개; 행 15:35 참조.

여호와의 말씀: 이 표현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나온 것이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말씀;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와 하느님의 이름이 결합된 표현이 약 200개의 구절에 나온다. (그러한 예를 보려면 삼하 12:9; 24:11; 왕하 7:1; 20:16; 24:2; 사 1:10; 2:3; 28:14; 38:4; 렘 1:4; 2:4; 겔 1:3; 6:1; 호 1:1; 미 1:1; 슥 9:1 참조) 「칠십인역」의 한 초기 사본에서 슥 9:1을 보면, 그리스어 로고스 다음에 고대 히브리어 글자로 된 하느님의 이름()이 나온다. 그 초기 사본은 이스라엘 사해 근처 유대 사막의 나할헤베르에서 발견된 양피지 두루마리인데, 기원전 50년에서 기원 50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많은 그리스어 사본들에서는 행 8:25의 이 부분이 “주의 말씀”으로 되어 있지만 「신세계역」 본문에서는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가 부록 다3 소개; 행 8:25에 설명되어 있다.

여호와의 말씀: 행 8:25 연구 노트부록 다3 소개; 행 15:36 참조.

여호와의 말씀: 이 표현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나온 것이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말씀;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와 하느님의 이름이 결합된 표현이 약 200개의 구절에 나온다. (그러한 예를 보려면 삼하 12:9; 24:11; 왕하 7:1; 20:16; 24:2; 사 1:10; 2:3; 28:14; 38:4; 렘 1:4; 2:4; 겔 1:3; 6:1; 호 1:1; 미 1:1; 슥 9:1 참조) 「칠십인역」의 한 초기 사본에서 슥 9:1을 보면, 그리스어 로고스 다음에 고대 히브리어 글자로 된 하느님의 이름()이 나온다. 그 초기 사본은 이스라엘 사해 근처 유대 사막의 나할헤베르에서 발견된 양피지 두루마리인데, 기원전 50년에서 기원 50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많은 그리스어 사본들에서는 행 8:25의 이 부분이 “주의 말씀”으로 되어 있지만 「신세계역」 본문에서는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가 부록 다3 소개; 행 8:25에 설명되어 있다.

여호와: 사도행전에서 과분한 친절이라는 표현은 대부분 하느님과 관련하여 사용된다. (행 11:23; 13:43; 20:24, 32) 행 14:26에는 이 구절과 비슷한 표현인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에 맡겨졌다”는 말이 나온다.—부록 다3 소개; 행 15:40.

미디어

사도행전—바울의 2차 선교 여행 (행 15:36–18:22) 기원 49-52년경
사도행전—바울의 2차 선교 여행 (행 15:36–18:22) 기원 49-52년경

사건은 시간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다

1. 바울과 바나바가 헤어지다. 바울은 실라와 함께 떠나고 바나바는 마가라고도 하는 요한을 데려가다 (행 15:36-41)

2. 바울이 데르베에 갔다가 리스트라로 가다. 리스트라에서 디모데를 자신의 선교 여행에 동반하기로 하다 (행 16:1-4)

3. 바울이 아시아 속주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을 성령이 막다. 바울이 프리지아와 갈라디아를 가로질러 미시아로 가다 (행 16:6, 7)

4. 바울과 그 일행이 트로아스로 내려갔을 때 바울이 환상을 보다. 환상 가운데서 어떤 마케도니아 사람이 형제들에게 마케도니아로 와 달라고 청하다 (행 16:8-10)

5. 바울과 그 일행이 트로아스에서 배를 타고 네아폴리스로 간 다음 빌립보로 가다 (행 16:11, 12)

6. 빌립보의 성문 밖 강가에서 바울이 여자들에게 말하다. 루디아와 그의 집안이 침례를 받다 (행 16:13-15)

7.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감옥에 갇히다. 간수와 그의 집안이 침례를 받다 (행 16:22-24, 31-33)

8. 바울이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다. 시 행정관들이 형제들을 감옥에서 데리고 나오다. 바울이 루디아의 집으로 가서 새로 침례받은 사람들을 격려하다 (행 16:37-40)

9. 바울과 그 일행이 암피폴리스와 아폴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로 가다 (행 17:1)

10.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전파하다. 몇몇 유대인들과 많은 그리스인이 신자가 되다.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도시에 소동을 일으키다 (행 17:2-5)

11. 바울과 실라가 베레아에 도착하여 그곳의 회당에서 전파하다.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와서 무리를 선동하여 소란을 일으키다 (행 17:10-13)

12. 바울이 배를 타고 아테네로 가고, 실라와 디모데는 베레아에 남다 (행 17:14, 15)

13. 바울이 아테네의 아레오바고에서 사람들에게 말하다. 몇몇 사람들이 신자가 되다 (행 17:22, 32-34)

14. 바울이 고린도에 18개월 동안 머물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치다. 일부 사람이 반대하지만 많은 사람이 믿고 침례를 받다 (행 18:1, 8, 11)

15. 바울이 고린도의 항구 겐그레아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함께 배를 타고 에베소로 가다. 에베소에서 바울이 회당에서 전파하다 (행 18:18, 19)

16. 바울이 배를 타고 카이사레아로 떠나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에베소에 남다. 바울이 아마도 예루살렘으로 간 뒤에, 시리아 안티오크로 가다 (행 18: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