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4:1-51

24  예수께서 성전을 떠나실 때에 제자들이 다가와서 그분에게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였다.  그러자 그분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이 모든 것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반드시 다 무너질 것입니다.”+  그분이 올리브 산에+ 앉아 계실 때에, 제자들이 따로 그분에게 와서 말했다.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언제 그런 일이 있을 것이며, 무엇이 주의 임재와+ 세상 제도의 종결의 표징이 되겠습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누구에게도 잘못 인도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라고 하며 많은 사람을 잘못된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전쟁을 벌이는 소리와 전쟁에 관한 소문을 들을 것입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이런 일들이 일어나야 하지만, 아직 끝은 아닙니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왕국과 왕국이 맞서 일어날 것이며,+ 곳곳에 식량 부족과+ 지진이 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진통의 시작입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여러분을 환난에 넘겨주고+ 죽일+ 것이며, 여러분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을 것입니다.+ 10  또한 많은 사람이 걸려 넘어질 것이며 서로 배반하고 서로 미워할 것입니다. 11  많은 거짓 예언자가 일어나 많은 사람을 잘못된 길로 인도할 것이며,+ 12  불법이 증가하여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을 것입니다.+ 13  그러나 끝까지 인내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4  그리고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해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될 것입니다.+ 그리고 끝이 올 것입니다. 15  그러므로 예언자 다니엘이 말한 대로, 황폐시키는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곳에 서 있는 것을 보거든+ (읽는 사람은 분별력을 사용하십시오) 16  그때에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피하십시오.+ 17  옥상에 있는 사람은 집에 있는 물건을 꺼내려고 내려가지 마십시오. 18  밭에 있는 사람은 겉옷을 가지러 돌아가지 마십시오.+ 19  그날에는 임신한 여자들과 젖 먹이는 이들에게 화가 있습니다!+ 20  여러분이 도피하는 일이 겨울철이나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도록 계속 기도하십시오. 21  그때에 큰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환난은 세상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일어난 적이 없었고 결코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22  사실, 그 날들이 단축되지 않는다면, 아무 육체도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선택된 자들 때문에 그 날들이 단축될 것입니다.+ 23  그때에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고 말해도 믿지 마십시오.+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나서, 할 수만 있으면 선택된 자들까지 잘못된 길로 인도하려고 큰 표징들과 놀라운 일들을 행할 것입니다.+ 25  보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경고해 둡니다. 26  그러므로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그가 광야에 있다!’ 하고 말해도 나가지 마십시오. ‘그가 골방에 있다!’ 하고 말해도 믿지 마십시오.+ 27  동쪽에서 친 번개가 서쪽까지 비추듯이, ‘사람의 아들’의 임재도 그러할 것입니다.+ 28  어디든지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여들 것입니다.+ 29  그날의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입니다.+ 30  그리고 ‘사람의 아들’의 표징이 하늘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면 땅의 모든 종족이 비탄에 잠겨 가슴을 칠 것이며+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가지고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입니다.+ 31  그리고 그는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자기 천사들을 보낼 것이며, 그들은 선택된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입니다.+ 32  무화과나무의 예에서 이 점을 배우십시오. 어린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아나면 여러분은 여름이 가깝다는 것을 압니다.+ 33  이와 같이 여러분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그가 문 앞에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아십시오.+ 34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이 세대가 사라지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35  하늘과 땅은 사라져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36  그 날과 그 시간에 관해서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십니다.+ 37  노아의 날처럼,+ ‘사람의 아들’의 임재도 그러할 것입니다.+ 38  홍수 이전 시대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면서+ 39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쓸어버릴 때까지+ 유의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아들’의 임재도 그러할 것입니다. 40  그때에 두 남자가 밭에 있는데,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입니다.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는데,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입니다.+ 42  그러므로 깨어 살피십시오. 여러분의 주가 어느 날에 올지 여러분이 모르기 때문입니다.+ 43  그러나 한 가지는 알아 두십시오.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았더라면,+ 깨어 있으면서 집에 도둑이 침입하지 못하게 했을 것입니다.+ 44  그러므로 여러분도 준비하고 있으십시오.+ 여러분이 생각지도 않은 시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45  주인이 자기 집안 일꾼들을 돌보도록 임명하여 그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나누어 주게 한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은 과연 누구입니까?+ 46  주인이 와서 그 종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그 종은 행복합니다!+ 47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주인이 자기의 모든 소유를 돌보도록 그를 임명할 것입니다. 48  그러나 만일 그 종이 악하여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어지는구나’ 하면서+ 49  동료 종들을 때리기 시작하고 술꾼들과 함께 먹고 마신다면, 50  그 종이 예상하지 못한 날, 알지도 못한 시간에+ 그의 주인이 와서 51  그를 매우 엄하게 처벌하여 위선자들과 같은 곳에 있게 할 것입니다. 거기서 그는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각주

달리 번역하면 “큰 권능과 영광”.

연구 노트

진실로: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아멘은 히브리어 아멘을 음역한 것으로 “그렇게 되소서” 또는 “확실히”를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어떤 사실을 말씀하시거나 약속이나 예언을 하시기 전에 이 표현을 자주 사용하심으로 자신의 말이 절대적으로 진실하고 신뢰할 만한 것임을 강조하셨다. 이러한 방식으로 “진실로” 즉 아멘을 사용한 예는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말씀에만 나오며 다른 종교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요한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께서는 때때로 이 표현을 연이어 사용하심으로(아멘 아멘) 자신의 말이 신뢰할 만하다는 점을 더욱 강조하셨다.—요 1:51 연구 노트 참조.

진실로: 마 5:18 연구 노트 참조.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예수의 예언은 정확히 성취되었다. 기원 70년에 로마는 예루살렘과 성전을 멸망시키면서 성벽의 일부분만 제외하고 그 도시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끝: 또는 “완전한 끝”. 이 구절에 사용된 그리스어(텔로스)는 마 24:3에서 “종결”이라고 번역된 그리스어(신텔레이아)와 다르다.—마 24:3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세상 제도의 종결” 참조.

끝: 또는 “완전한 끝; 최종적인 끝”.—마 24:3, 6 연구 노트 참조.

올리브 산: 예루살렘 동쪽, 기드론 골짜기 건너편에 있는 산. 이곳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인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막 13:3, 4)와 함께 예루살렘과 성전을 내려다보실 수 있었다.

임재: 그리스어 파루시아(많은 번역판에서는 “오다”라는 동사를 사용해서 이 단어를 번역한다)는 문자적으로 “곁에 있음”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단지 오거나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기간 동안 머물러 있는 것을 가리킨다. 마 24:37-39에서 “노아의 날 ··· 홍수 이전 시대”를 “‘사람의 아들’의 임재”에 비한 것을 보면 파루시아에 그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빌 2:12에서 “함께 있을 때”로 번역된 표현에도 동일한 그리스어가 사용되었는데, 바울은 이 단어를 “떨어져 있을 때”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했다.

세상 제도: 또는 “시대”. 여기서 그리스어 아이온은 특정한 기간이나 시대를 구분 짓는 상태나 특징을 가리킨다.—용어 설명 “세상 제도(들)” 참조.

종결: 또는 “종결 기간”. 그리스어 원어 신텔레이아는 “동시에 끝남; 집합적인 끝; 함께 끝남”을 의미한다. (마 13:39, 40, 49; 28:20; 히 9:26) 여기서 이 단어는 마 24:6, 14에서 언급하는 완전한 “끝”(그리스어 텔로스)에 이르기까지 복합적인 사건들이 발생하는 기간을 가리킨다.—마 24:6, 14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세상 제도의 종결” 참조.

그리스도: 그리스어 호 크리스토스. “그리스도”라는 칭호는 “메시아”(히브리어 마시아흐에서 유래)에 해당하는 것으로, 둘 다 “기름부음받은 자”라는 의미이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기원 1세기에 어떤 사람들이 예언자나 구원자로 자처하면서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그들을 따르던 사람들은 그들을 정치적 메시아로 여겼을 것이다.

종결: 또는 “종결 기간”. 그리스어 원어 신텔레이아는 “동시에 끝남; 집합적인 끝; 함께 끝남”을 의미한다. (마 13:39, 40, 49; 28:20; 히 9:26) 여기서 이 단어는 마 24:6, 14에서 언급하는 완전한 “끝”(그리스어 텔로스)에 이르기까지 복합적인 사건들이 발생하는 기간을 가리킨다.—마 24:6, 14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세상 제도의 종결” 참조.

끝: 또는 “완전한 끝”. 이 구절에 사용된 그리스어(텔로스)는 마 24:3에서 “종결”이라고 번역된 그리스어(신텔레이아)와 다르다.—마 24:3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세상 제도의 종결” 참조.

모든 민족 ···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 두 표현 모두 전파 활동의 범위를 강조한다. 일반적으로 “민족”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에트노스)는 어느 정도 혈연관계가 있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집단을 가리킨다. 그런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흔히 일정한 지역에 거주한다. ‘사람이 거주하는 땅’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오이쿠메네)는 넓은 의미로 사용될 경우 사람이 사는 땅 전체를 가리킨다. (눅 4:5; 행 17:31; 롬 10:18; 계 12:9; 16:14) 1세기에 이 단어는 유대인들이 흩어져 살았던 광대한 로마 제국을 가리키는 데도 사용되었다.—눅 2:1; 행 24:5.

민족: 그리스어 원어 에트노스는 넓은 의미를 지닌 표현으로서, 국가와 같은 정치적•지리적 경계 내에 사는 사람들을 가리킬 수도 있고 같은 민족 집단을 가리킬 수도 있다.—마 24:14 연구 노트 참조.

일어나고 ... 일어날: 또는 “격동하게 되고”. 이 구절에서 그리스어 원어는 “적대감을 품고 대적하다”라는 사상을 전달하며 “무기를 들고 일어서다” 또는 “전쟁을 벌이다”라고도 번역할 수 있다.

진통: 그리스어 원어는 문자적으로 출산할 때 겪는 극심한 통증을 가리킨다. 이 구절에서는 이 단어가 일반적인 고난, 고통, 괴로움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쓰였다. 하지만 이 표현에는 예수께서 예언하신 문제들과 고난이 마 24:21에 나오는 큰 환난이 닥치기 전에 마치 출산의 고통처럼 갈수록 더 자주, 더 심하게, 더 지속적으로 일어날 것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을 수 있다.

이름: 네 개의 히브리어 자음 יהוה(YHWH)으로 표기되는 하느님의 고유한 이름을 가리킨다. 이 이름의 일반적인 한국어 음역 표현은 “여호와”이다. 「신세계역」에는 이 이름이 히브리어 성경에 6979회,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237회 나온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하느님의 이름이 나오는 이유를 알아보려면, 부록 가5부록 다 참조) 성경에서 “이름”이라는 말은 때때로 개인의 평판이나 그 자신, 그가 자신에 대해 밝혀 주는 모든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출 34:5, 6; 계 3:4, 각주 비교.

내 이름 때문에: 성경에서 “이름”이라는 말은 때때로 그 이름을 지닌 사람 자신이나 그의 평판, 그가 대표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마 6:9 연구 노트 참조) 예수의 경우, 그분의 이름은 아버지께서 주신 권한과 지위를 상징하기도 한다. (마 28:18; 빌 2:9, 10; 히 1:3, 4) 이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제자들을 대적하는 이유가 예수를 보내신 분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느님을 아는 사람들은 예수의 이름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인정할 것이다. (행 4:12) 예수의 이름이 상징하는 것에는 하느님께서 임명하신 통치자이자 왕들의 왕으로서의 지위가 포함되며, 모든 사람은 생명을 얻기 위해 그분께 복종해야 한다.—요 17:3; 계 19:11-16. 시 2:7-12 비교.

내 이름 때문에: 성경에서 “이름”이라는 말은 때때로 그 이름을 지닌 사람 자신이나 그의 평판, 그가 대표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마 6:9 연구 노트 참조) 예수의 경우, 그분의 이름은 아버지께서 주신 권한과 지위를 상징하기도 한다. (마 28:18; 빌 2:9, 10; 히 1:3, 4) 이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그분의 이름이 상징하는 것, 즉 하느님께서 임명하신 통치자이자 왕들의 왕, 생명을 얻기 위해 모든 사람이 복종해야 할 분으로서의 그분의 지위 때문에 사람들이 제자들을 미워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요 15:21 연구 노트 참조.

그들은 그분 때문에 걸려 넘어졌다: 또는 “그들은 그분에게 반감을 품었다;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 문맥에서 그리스어 스칸달리조는 비유적인 의미에서 걸려 넘어지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으로서, “반감을 품다; 못마땅하게 여기다”를 뜻한다. 이 표현은 “그들은 그분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다른 문맥에서는 이 그리스어 단어가 죄를 짓거나 다른 사람이 죄를 짓게 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마 5:29 연구 노트 참조.

걸림돌: 그리스어 원어 스칸달론은 원래 덫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것 같다. 일부 학자들은 이 단어가 덫 안에 있는, 미끼를 놓는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점차 의미가 넓어져서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은 무엇이든 가리키게 되었다. 비유적인 의미로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거나, 도덕적인 면에서 걸려 넘어지게 하거나, 죄를 짓게 하는 행동 또는 환경을 가리킨다. 마 18:8, 9에서는 스칸달론과 어근이 같은 동사 스칸달리조가 “걸려 넘어지게 하다”로 번역되었는데, 이 표현은 “올무가 되다; 죄를 짓게 하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걸려 넘어질 것이며: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그리스어 단어 스칸달리조는 비유적인 의미에서 걸려 넘어지거나 다른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으로서, 죄를 짓거나 죄를 짓게 한다는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성경에서 이 표현이 사용된 사례들을 보면, 여기서 죄는 도덕에 관한 하느님의 법을 범하거나 믿음을 잃거나 거짓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이 문맥에서, “걸려 넘어질 것이며”라는 표현은 “죄를 짓게 될 것이며; 믿음에서 떠날 것이며”로 번역할 수도 있다. 스칸달리조는 “반감을 품다; 못마땅하게 여기다”라는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다.—마 13:57; 18:7 연구 노트 참조.

불법: 그리스어 원어에는 법을 어기고 업신여기면서 마치 법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성경에서는 이 단어가 하느님의 법을 무시한다는 뜻으로 사용된다.—마 7:23; 고후 6:14; 살후 2:3-7; 요1 3:4.

많은: 또는 “대부분의”. 일반적인 의미의 “많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마 24:11, 12에 나오는 “거짓 예언자”와 “불법”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끝: 또는 “완전한 끝”. 이 구절에 사용된 그리스어(텔로스)는 마 24:3에서 “종결”이라고 번역된 그리스어(신텔레이아)와 다르다.—마 24:3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세상 제도의 종결” 참조.

끝: 또는 “완전한 끝; 최종적인 끝”.—마 24:3, 6 연구 노트 참조.

끝: 마 24:6, 14 연구 노트 참조.

인내하는: “인내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히포메노)는 문자적으로 “아래에 머물러(남아) 있다”를 의미한다. 이 말은 흔히 “도망가지 않고 남아 있다;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다; 견뎌 내다; 굳건하게 그대로 있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마 10:22; 롬 12:12; 히 10:32; 약 5:11) 이 문맥에서는 반대와 시련을 겪으면서도 계속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것을 가리킨다.—마 24:9-12.

왕국: 그리스어 바실레이아가 처음 나오는 곳으로, 왕이 다스리는 정부뿐만 아니라 왕의 통치를 받는 영토와 민족들을 가리킨다. 이 그리스어 단어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총 162회 나온다. 그중 55회가 마태복음에 나오는데, 대부분 하느님의 하늘 정부를 가리킨다. 마태가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하기 때문에 그의 복음서는 “왕국 복음서”라고 불리기도 한다.—용어 설명 “하느님의 왕국” 참조.

좋은 소식: 일부 성경에서 “복음”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유앙겔리온이 처음 나오는 곳. 관련된 그리스어 표현인 유앙겔리스테스는 “복음 전파자”로 번역되며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을 의미한다.—행 21:8; 엡 4:11, 각주; 딤후 4:5, 각주.

하느님의 왕국: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 전체에서 좋은 소식은 하느님의 왕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수께서는 이 왕국을 주제로 전파하고 가르치셨다. “하느님의 왕국”이라는 표현은 그리스어 원문에서 누가복음에 32회, 마가복음에 14회, 마태복음에 4회 나온다. 하지만 마태는 비슷한 의미를 지닌 “하늘 왕국”이라는 표현을 약 30회 사용한다.—마 3:2; 24:14; 막 1:15 연구 노트 참조.

나의 증인: 예수의 초기 제자들은 충실한 유대인으로서 이미 여호와의 증인이었으며 여호와만이 유일하신 참하느님이심을 증언한 사람들이었다. (사 43:10-12; 44:8) 하지만 이제 제자들은 여호와의 증인만 아니라 예수의 증인도 되어야 했다. 그들은 여호와의 목적의 새로운 부면, 즉 메시아 왕국을 통해 여호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일에서 예수께서 수행하시는 중요한 역할을 알려야 했다. 사도행전에는 “증인”(마르티스), “증언하다; 증거하다”(마르티레오), “철저히 증거하다”(디아마르티로마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들과 그와 어근이 같은 단어들이 성경에서 요한복음 다음으로 많이 나온다. (요 1:7 연구 노트 참조) 여호와와 예수의 증인이 되어 하느님의 목적에 관해 철저히 증거한다는 사상은 사도행전 전반에 흐르는 주제이다. 제자들이 증거해야 했던 하느님의 목적에는 그분의 왕국과 예수의 중요한 역할이 포함되었다. (행 2:32, 40; 3:15; 4:33; 5:32; 8:25; 10:39; 13:31; 18:5; 20:21, 24; 22:20; 23:11; 26:16; 28:23) 1세기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은 그러한 일들이 실제로 있었다는 점을 확증함으로 예수에 대해 증언했다. (행 1:21, 22; 10:40, 41) 나중에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은 그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이 갖는 중요한 의미를 선포함으로 예수에 대해 증언했다.—행 22:15. 요 18:37 연구 노트 참조.

전파하며: 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는 기본적으로 “공식 사자로서 소식을 선포하다”를 의미한다. 이 표현은 선포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공개적으로 널리 알리는 것을 가리킨다.

종결: 또는 “종결 기간”. 그리스어 원어 신텔레이아는 “동시에 끝남; 집합적인 끝; 함께 끝남”을 의미한다. (마 13:39, 40, 49; 28:20; 히 9:26) 여기서 이 단어는 마 24:6, 14에서 언급하는 완전한 “끝”(그리스어 텔로스)에 이르기까지 복합적인 사건들이 발생하는 기간을 가리킨다.—마 24:6, 14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세상 제도의 종결” 참조.

끝: 또는 “완전한 끝”. 이 구절에 사용된 그리스어(텔로스)는 마 24:3에서 “종결”이라고 번역된 그리스어(신텔레이아)와 다르다.—마 24:3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세상 제도의 종결” 참조.

왕국: 하느님의 왕국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 전체에서 “좋은 소식”(바로 다음에 나오는 좋은 소식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은 하느님의 왕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수께서는 이 왕국을 주제로 전파하고 가르치셨다.—마 3:2; 4:23; 눅 4:43 연구 노트 참조.

좋은 소식: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단어 유앙겔리온은 “좋은” 또는 “잘”이라는 뜻의 라는 단어와 “소식을 전하는 자; 선포(선언)하는 자”를 의미하는 앙겔로스라는 단어에서 나온 말이다. (용어 설명 참조) 일부 성경에서는 이 표현을 “복음”으로 번역한다. 같은 어근에서 나온 “복음 전파자”(그리스어 유앙겔리스테스)라는 표현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행 21:8; 엡 4:11, 각주; 딤후 4:5, 각주.

모든 민족 ···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 두 표현 모두 전파 활동의 범위를 강조한다. 일반적으로 “민족”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에트노스)는 어느 정도 혈연관계가 있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집단을 가리킨다. 그런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흔히 일정한 지역에 거주한다. ‘사람이 거주하는 땅’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오이쿠메네)는 넓은 의미로 사용될 경우 사람이 사는 땅 전체를 가리킨다. (눅 4:5; 행 17:31; 롬 10:18; 계 12:9; 16:14) 1세기에 이 단어는 유대인들이 흩어져 살았던 광대한 로마 제국을 가리키는 데도 사용되었다.—눅 2:1; 행 24:5.

증거되기 위해: 또는 “증언되기 위해”. 모든 민족이 좋은 소식을 듣게 될 것이라고 확언하신 것이다.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마르티리온(증거; 증언)이나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그리스어 단어들은 종종 특정 대상과 관련된 사실이나 사건을 진술하는 것을 가리킨다. (행 1:8 연구 노트 참조) 이 경우에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왕국이 이룰 일을 전 세계적으로 증언하는 일과 그 왕국과 관련된 사건들을 알리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세계적인 왕국 전파 활동 자체가 자신의 ‘임재의 표징’의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이 될 것임을 밝히고 계신다. (마 24:3) 모든 민족에게 왕국 소식이 증거될 것이라는 예수의 말씀은 모든 민족이 참그리스도교로 개종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단지 그들이 그 증언을 듣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전파될: 또는 “공개적으로 선포될”.—마 3:1 연구 노트 참조.

끝: 또는 “완전한 끝; 최종적인 끝”.—마 24:3, 6 연구 노트 참조.

봉헌 축제: 이 축제의 히브리어 이름은 하누카(하눅카)로 “낙성식; 봉헌식”을 의미한다. 봉헌 축제는 시리아 왕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가 더럽혀 놓은 예루살렘 성전을 기원전 165년에 다시 봉헌한 일을 기념하는 행사로서, 동지 무렵인 기슬레우월 25일부터 8일 동안 열렸다. (이 구절에 나오는 겨울에 대한 연구 노트 및 부록 나15 참조) 안티오코스는 유대인들의 하느님 여호와를 경멸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여호와의 성전을 더럽혔다. 예를 들어, 그는 날마다 번제물이 바쳐지던 큰 제단 위에 별도의 제단을 세웠다. 기원전 168년 기슬레우월 25일에 안티오코스는 여호와의 성전을 완전히 더럽혀 놓으려고 그 제단에 돼지를 바치고 그 고기로 만든 국물을 성전 전체에 뿌렸다. 또한 성전 문들을 불태우고, 제사장 방들을 허물어뜨렸으며, 금제단과 진설병 상과 금등잔대를 가져갔다. 그런 다음 여호와의 성전을 이교 신인 올림포스의 제우스에게 바쳤다. 2년 뒤에 유다 마카베오는 예루살렘과 성전을 탈환했다. 성전을 깨끗하게 하는 일이 끝난 후, 기원전 165년 기슬레우월 25일에 성전이 다시 봉헌되었다. 이날은 안티오코스가 제단에서 혐오스러운 희생 제물을 제우스에게 바친 지 꼭 3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렇게 해서 여호와께 날마다 번제물을 바치는 일이 다시 시작되었다. 영감받은 성경에는 여호와께서 유다 마카베오가 승리하게 해 주시고 그에게 성전을 회복하도록 지시하셨다는 직접적인 언급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자신에 대한 숭배와 관련된 특정한 목적을 이행하기 위해 페르시아의 키루스와 같은 이방 나라 사람을 사용하신 적이 있다. (사 45:1) 따라서 여호와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헌신한 백성에 속한 사람도 충분히 사용하실 수 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이 이치적이다. 성경에 따르면, 메시아와 그의 봉사와 희생에 관한 예언들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예루살렘 성전이 존재하고 기능을 발휘하고 있어야 했다. 또한 레위 제사장들이 희생 제물을 바치는 일은 메시아가 더 큰 희생, 즉 인류를 위한 자신의 생명을 바칠 때까지 계속되어야 했다. (단 9:27; 요 2:17; 히 9:11-14)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봉헌 축제를 지키라는 명령을 받지 않았다. (골 2:16, 17) 하지만 이 축제를 지키는 것을 예수나 그분의 제자들이 정죄했다는 기록은 없다.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예루살렘이 종종 거룩한 도시라고 불린 것은 여호와의 성전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느 11:1; 사 52:1.

황폐시키는 혐오스러운 것: 다니엘은 “혐오스러운 것(들)”이 황폐케 하는 일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단 9:27; 11:31; 12:11) 이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황폐시키는 혐오스러운 것”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며 앞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알려 주신다. 예수께서 돌아가신 지 33년 뒤에 그리스도인들은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곳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예언의 일차적인 성취를 목격한 것이다. 평행 성구인 눅 21:20에서는 이렇게 알려 준다. “예루살렘이 진을 친 군대에게 포위되는 것을 보거든, 그 도시가 황폐되는 일이 가까이 온 줄을 아십시오.” 기원 66년에 이교도인 로마 군대는 유대인들이 거룩하게 여기던 곳, 로마에 대한 그들의 반란의 중심지였던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을 포위했다. (마 4:5; 27:53) 우상과도 같은 군기를 앞세운 로마 군대가 “혐오스러운 것”이라는 점을 이해한 분별력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산으로 도피하라”는 최종 신호로 받아들였다. (마 24:15, 16; 눅 19:43, 44; 21:20-22) 그리스도인들이 도피한 뒤에 로마군은 예루살렘과 유대 나라를 황폐시켰다. 예루살렘은 기원 70년에 멸망되었으며, 유대인의 마지막 요새인 마사다는 기원 73년에 로마군에 의해 함락되었다. (단 9:25-27 비교) 이 예언의 일차적 성취가 자세한 점까지 정확히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예수께서 “권능과 큰 영광을 가지고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실” 때 절정에 이르게 될 더 큰 성취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된다. (마 24:30) 많은 사람들은 다니엘의 예언이 예수 시대 이후에 성취될 것이라는 그분의 말씀을 무시하고, 유대교의 전통 가르침에 따라 다니엘의 예언을 기원전 168년에 시리아 왕 안티오코스 4세(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을 더럽힌 일에 적용한다. 여호와에 대한 숭배를 없애려고 했던 안티오코스는 여호와의 큰 제단 위에 다른 제단을 세우고 이교 신인 올림포스의 제우스에게 돼지를 제물로 바치기까지 했다. (요 10:22 연구 노트 참조) 경외서인 마카베오 1서(1:54)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을 황폐와 연관 짓는) 다니엘서의 표현과 비슷한 표현을 사용하면서, 그것을 기원전 168년에 있었던 일에 적용한다. 하지만 유대교의 전통 가르침과 마카베오 1서의 기록은 영감받은 계시가 아니라 인간의 해석이다. 안티오코스가 성전을 더럽힘으로 혐오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공격이 예루살렘이나 성전 또는 유대 나라가 황폐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거룩한 곳: 이 예언의 일차적인 성취에서는 예루살렘과 그곳에 있는 성전을 가리킨다.—마 4:5 연구 노트 참조.

(읽는 사람은 분별력을 사용하십시오): 하느님의 말씀을 연구할 때에는 언제나 분별력을 사용해야 하지만, 다니엘의 예언의 이 부분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살필 때에는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이 예언의 성취가 과거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미래에 있을 일이라고 주의를 주신 것이다.—이 구절에 나오는 황폐시키는 혐오스러운 것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유대: 로마 속주인 유대를 가리킨다.

산으로: 4세기 역사가인 유세비우스는 유대와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이 요르단강을 건너 데카폴리스 산지에 있는 도시인 펠라로 도망했다고 알려 준다.

옥상에 있는: 당시의 집들에는 평평한 옥상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곳을 여러 가지 목적으로 사용했다. 물건을 보관하기도 하고, (수 2:6)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삼하 11:2) 잠을 자기도 했으며, (삼상 9:26) 축제 때에는 숭배를 위해 사용하기도 했다. (느 8:16-18) 그래서 난간을 설치하는 것이 요구되었다. (신 22:8) 많은 경우, 옥상에 있는 사람은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도 외부에 있는 계단이나 사다리를 통해 내려올 수 있었다. 이러한 점은 예수의 경고에 따라 도피하는 것이 얼마나 긴급한 일이었는지를 강조해 준다.

겨울철: 겨울에는 비가 많이 내리고 홍수가 나고 날씨가 추웠기 때문에 이동하면서 식량이나 머물 곳을 구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라 10:9, 13.

안식일: 안식일에는 제한 규정이 있었기 때문에 유대와 같은 지역들에서는 먼 거리를 이동하거나 짐을 가져가기가 어려웠다. 또한 그날에는 도시의 성문이 닫혀 있었다.—행 1:12부록 나12 참조.

그리스도: 그리스어 호 크리스토스. “그리스도”라는 칭호는 “메시아”(히브리어 마시아흐에서 유래)에 해당하는 것으로, 둘 다 “기름부음받은 자”라는 의미이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기원 1세기에 어떤 사람들이 예언자나 구원자로 자처하면서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그들을 따르던 사람들은 그들을 정치적 메시아로 여겼을 것이다.

거짓 그리스도들: 또는 “거짓 메시아들”. 그리스어 프세우도크리스토스는 이 구절과 그 평행 기록인 막 13:22에만 나온다. 이 표현은 자기가 그리스도 즉 메시아(문자적 의미는 “기름부음받은 자”)라고 거짓 주장을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마 24:5 연구 노트 참조.

보라!: 여기서 “보라!”로 번역된 그리스어 이두는 이어지는 내용으로 주의를 이끌어 독자가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거나 세부적인 점에 유의하게 하기 위해 종종 사용된다. 또한 강조하기 위해 혹은 새롭거나 놀라운 점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사용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단어가 많이 나오는 책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요한 계시록이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도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가 자주 사용된다.

보십시오!: 마 1:23 연구 노트 참조.

‘사람의 아들’: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킬 때 사용하신 표현. 복음서에 약 80회 나온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실제로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점과 자신이 아담을 대신할 수 있는 적합한 사람으로서 인류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속할 능력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이 표현을 사용하신 것 같다. (롬 5:12, 14, 15) 또한 이 표현은 예수가 메시아 즉 그리스도임을 밝혀 주었다.—단 7:13, 14. 용어 설명 참조.

임재: 그리스어 파루시아(많은 번역판에서는 “오다”라는 동사를 사용해서 이 단어를 번역한다)는 문자적으로 “곁에 있음”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단지 오거나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기간 동안 머물러 있는 것을 가리킨다. 마 24:37-39에서 “노아의 날 ··· 홍수 이전 시대”를 “‘사람의 아들’의 임재”에 비한 것을 보면 파루시아에 그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빌 2:12에서 “함께 있을 때”로 번역된 표현에도 동일한 그리스어가 사용되었는데, 바울은 이 단어를 “떨어져 있을 때”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했다.

‘사람의 아들’: 마 8:20 연구 노트 참조.

임재: 마 24:3 연구 노트 참조.

사람의 아들’의 표징: 이 표징은 마 24:3에 언급된 예수의 ‘임재의 표징’과는 다른 것이다. 이 구절에서 언급된 표징은 ‘사람의 아들’이 큰 환난 중에 심판을 선고하고 집행하기 위해 심판관으로 “오는” 것과 관련이 있다.—이 구절에 나오는 오는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비탄에 잠겨 가슴을 칠 것이며: 또는 “몹시 슬퍼할 것이며”. 손으로 가슴을 반복해서 치는 것은 매우 큰 슬픔이나 죄책감, 후회를 나타내는 행동이다.—사 32:12; 나 2:7; 눅 23:48.

하늘의 구름: 구름에 가려진 것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해의 눈이 있으면 그러한 것도 “볼” 수 있다.—행 1:9.

오는: 마태복음 24, 25장에는 예수의 오심에 관한 언급이 여덟 번 나오는데, 이것은 그중 첫 번째이다. (마 24:42, 44, 46; 25:10, 19, 27, 31) 여덟 번 모두 “오다”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동사 에르코마이의 변화형이 사용되었다. 여기서 이 단어는 인류에게 주의를 돌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특히 예수께서 큰 환난 중에 심판을 선고하고 집행하기 위해 심판관으로 오시는 것을 가리킨다.

볼 것입니다: “보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는 문자적으로 “사물을 보다; 바라보다”를 의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단어는 정신의 눈으로 본다는 비유적인 뜻으로 사용되어 “분별하다; 지각하다”를 의미할 수도 있다.—엡 1:18.

사방: 그리스어 원어는 문자적으로 “네 바람”을 의미하는데, 동서남북 즉 “모든 방향; 모든 곳”을 가리키는 관용적인 표현이다.—렘 49:36; 겔 37:9; 단 8:8.

비유: 그리스어 원어 파라볼레는 문자적으로 “곁에(함께) 두는 것”을 의미하는데, 잠언이나 비유를 가리킬 수 있다. 예수께서는 어떤 것을 설명하실 때 다른 비슷한 것에 비하는 방법 즉 ‘곁에 두는’ 방법을 자주 사용하셨다. (막 4:30) 그분은 대개 자신이 지어낸 짧은 이야기를 비유로 들어 도덕적•영적 진리를 이끌어 내셨다.

예: 또는 “비유; 교훈”.—마 13:3 연구 노트 참조.

하늘과 땅은 사라져도: 다른 성구들에서는 하늘과 땅이 영원히 있을 것이라고 알려 준다. (창 9:16; 시 104:5; 전 1:4) 따라서 이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과장법을 사용해서, 하늘과 땅이 사라지는 불가능한 일이 설령 일어나더라도 자신의 말은 성취될 것이라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일 수 있다. (마 5:18 비교) 하지만 예수께서 여기서 말씀하신 하늘과 땅은 계 21:1에서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이라고 언급된 비유적인 하늘과 땅을 가리키는 것 같다.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어 원문에서는 동사 앞에 2개의 부정어가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강한 부정의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예수의 말씀이 영원할 것임을 생생하게 강조한다.

임재: 그리스어 파루시아(많은 번역판에서는 “오다”라는 동사를 사용해서 이 단어를 번역한다)는 문자적으로 “곁에 있음”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단지 오거나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기간 동안 머물러 있는 것을 가리킨다. 마 24:37-39에서 “노아의 날 ··· 홍수 이전 시대”를 “‘사람의 아들’의 임재”에 비한 것을 보면 파루시아에 그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빌 2:12에서 “함께 있을 때”로 번역된 표현에도 동일한 그리스어가 사용되었는데, 바울은 이 단어를 “떨어져 있을 때”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했다.

임재: 그리스어 파루시아(많은 번역판에서는 “오다”라는 동사를 사용해서 이 단어를 번역한다)는 문자적으로 “곁에 있음”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단지 오거나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기간 동안 머물러 있는 것을 가리킨다. 마 24:37-39에서 “노아의 날 ··· 홍수 이전 시대”를 “‘사람의 아들’의 임재”에 비한 것을 보면 파루시아에 그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빌 2:12에서 “함께 있을 때”로 번역된 표현에도 동일한 그리스어가 사용되었는데, 바울은 이 단어를 “떨어져 있을 때”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했다.

노아의 날: 성경에서 “~의 날(들)”이라는 표현은 때때로 특정한 사람이 살았던 시대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사 1:1; 렘 1:2, 3; 눅 17:28) 이 구절에서는 ‘사람의 아들’의 임재를 “노아의 날”에 비한다.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 눅 17:26에서는 “‘사람의 아들’의 날”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임재를 노아의 날의 절정을 이룬 대홍수가 닥친 특정한 날에 비하신 것이 아니다. “노아의 날”은 사실 여러 해에 걸친 기간이었다. 따라서 예언된 “‘사람의 아들’의 임재[또는 “날”]”도 여러 해에 걸친 기간이라고 이해할 만한 근거가 있다. 노아의 날이 대홍수로 절정에 이른 것처럼, “‘사람의 아들’의 임재”도 구원받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의 멸망으로 절정에 이를 것이다.—마 24:3 연구 노트 참조.

임재: 마 24:3 연구 노트 참조.

홍수: 또는 “대홍수; 대격변”. 그리스어 원어 카타클리스모스는 파괴적인 큰 홍수를 뜻한다. 성경은 노아 시대의 대홍수를 가리킬 때 이 단어를 사용한다.—마 24:39; 눅 17:27; 벧후 2:5.

방주: 그리스어 원어는 “궤; 상자”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방주가 큰 상자 모양이었다는 사상을 전달하는 것 같다. 「불가타」역에서는 이 단어가 “상자; 궤”를 의미하는 아르카라는 단어로 번역되었으며, 이 단어에서 방주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아크”(ark)가 유래했다.

데려가고: “데려가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여러 문맥에서 사용되며 종종 긍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예를 들어, 마 1:20에서는 “집으로 데려오시오”로 번역되었으며, 마 17:1에서는 “데리고”로, 요 14:3에서는 “맞이하여”로 번역되었다. 이 문맥에서는 이 표현이 “주” 앞에서 은혜를 누리는 신분을 갖게 되어 구원을 받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눅 17:37) 또한 이것은 홍수가 일어났을 때 노아가 방주에 들어간 일과 천사들이 롯의 손을 잡고 그를 소돔 밖으로 데려간 일에 상응할 것이다. (눅 17:26-29) 버려둔다는 것은 멸망되기에 합당하다는 심판을 받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데려가고 ··· 버려둘: 눅 17:34 연구 노트 참조.

깨어 있으십시오: 또는 “깨어 살피십시오”. 이전에도 예수께서는 자신이 올 날과 시간을 제자들이 모르기 때문에 그들이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신 적이 있다. (마 24:42; 25:13 연구 노트 참조) 그분은 이 구절에서 다시 그러한 권고를 하신다. 그리고 마 26:41에서 또다시 그 권고를 하시면서, 영적으로 깨어 있는 것과 꾸준히 기도하는 것을 관련지으셨다. 이와 비슷한 권고가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 전체에 걸쳐 나오는데, 이 점을 볼 때 영적으로 깨어 있는 것이 참그리스도인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전 16:13; 골 4:2; 살전 5:6; 벧전 5:8; 계 16:15.

깨어 살피십시오: 그리스어 원어는 기본적으로 “깨어 있다”를 의미하며, 많은 문맥에서 “경계하다; 주의 깊이 살피다”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마태는 마 24:43; 25:13; 26:38, 40, 41에서 이 단어를 사용하며, 마 24:44에서는 이 단어를 “준비하고” 있어야 할 필요성과 연관 짓는다.—마 26:38 연구 노트 참조.

시: 또는 “경”. 용어 설명 “” 참조.

관리인: 또는 “집안 관리인; 집사”.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단어 오이코노모스는 종의 신분이면서, 다른 종들 위에 임명된 사람을 가리킨다. 고대에는 대개 충실한 종에게 그런 직분이 주어졌으며 그에게는 주인의 일들을 관리하는 책임이 맡겨졌다. 따라서 관리인은 크게 신임받는 직분이었다. “[아브라함이] 가진 모든 것을 관리”했던 그의 종이 그러한 관리인 즉 집사였다. (창 24:2) 창 39:4에서 알려 주는 것처럼 요셉도 그러한 위치에 있었다. 예수께서 이 비유에서 사용하신 “관리인”이라는 말은 단수형으로 되어 있다. 단수형이 사용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그 관리인이 특정한 사람 하나만을 가리킨다고 볼 수는 없다. 성경에는 단수 명사가 하나의 집단을 가리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여호와께서는 하나의 집단인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의 증인들[복수형], 내가 선택한 나의 종[단수형]이다.” (사 43:10) 그와 마찬가지로 이 비유에서도 “관리인”은 하나의 집단을 가리킨다. 비슷한 비유가 나오는 마 24:45에서, 이 관리인은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으로 언급된다.

집안 일꾼들: 또는 “집안 하인들”. 주인의 집안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슬기로운: 그리스어 원어에는 이해력을 나타낸다는 의미가 들어 있는데, 여기에는 통찰력, 분별력, 앞날을 내다보고 준비하는 태도, 실용적인 지혜, 신중한 태도가 포함된다. 동일한 단어가 마 7:2425:2, 4, 8, 9에도 사용되었다. 「칠십인역」창 41:33, 39에서 요셉을 묘사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한다.

종: 예수께서 이 비유에서 사용하신 “종”이라는 말은 단수형으로 되어 있다. 단수형이 사용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종이 특정한 사람 하나만을 가리킨다고 볼 수는 없다. 성경에는 단수 명사가 하나의 집단을 가리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의 증인들[복수형], 내가 선택한 나의 종[단수형]이다.” (사 43:10) 비슷한 비유가 나오는 눅 12:42에서, 이 종은 “충실한 관리인 곧 슬기로운 사람”으로 언급된다.—눅 12:42 연구 노트 참조.

오는: 마태복음 24, 25장에는 예수의 오심에 관한 언급이 여덟 번 나오는데, 이것은 그중 첫 번째이다. (마 24:42, 44, 46; 25:10, 19, 27, 31) 여덟 번 모두 “오다”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동사 에르코마이의 변화형이 사용되었다. 여기서 이 단어는 인류에게 주의를 돌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특히 예수께서 큰 환난 중에 심판을 선고하고 집행하기 위해 심판관으로 오시는 것을 가리킨다.

와서: 마 24:30 연구 노트 참조.

그 종: 이 구절에 언급된 종은 눅 12:42에 나오는 관리인을 가리킨다. “그 종”이 충실하다면, 그는 상을 받게 될 것이다. (눅 12:43, 44) 반대로, “그 종”이 불충성스러운 태도를 나타낸다면 그는 “매우 엄하게” 처벌받을 것이다. (눅 12:46) 여기서 예수의 말씀은 사실상 충실한 관리인에게 하신 경고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마 24:45-51에 나오는 비슷한 비유에서 “만일 그 종이 악하여[직역하면 “그 악한 종이”] 마음속으로 ···”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은 “악한 종”이 있을 것임을 예언하신 것이 아니며 “악한 종”을 임명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충실한 종이 만일 악한 종과 같은 특성을 나타내기 시작하면 그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경고하신 것이다.

그 종이 악하여: 직역하면 “그 악한 종이”. 여기서 예수의 말씀은 사실상 마 24:45에 언급된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에게 하신 경고이다. 예수께서는 “악한 종”이 있을 것임을 예언하신 것이 아니며 “악한 종”을 임명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충실한 종이 만일 악한 종과 같은 특성을 나타내기 시작하면 그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경고하신 것이다. 그처럼 불충성스러운 태도를 나타내는 종은 “매우 엄하게 처벌”받을 것이다.—마 24:51. 눅 12:45 연구 노트 참조.

위선자들: 그리스어 히포크리테스는 원래 그리스(또한 훗날 로마)의 배우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당시 배우들은 목소리가 더 크게 울리게 해 주는 커다란 가면을 썼다. 이 단어는 후에 비유적인 의미를 갖게 되어, 속임수를 쓰거나 가식적인 행동을 하여 본래의 의도나 성격을 숨기는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유대교 지도자들을 “위선자들”이라고 부르신다.—마 6:5, 16.

이를 갈게: 또는 “이를 악물게”. 이를 간다는 표현은 고통, 절망, 분노를 느낀다는 의미를 포함할 수 있는데, 그러한 감정을 갖고 거친 말이나 폭력적인 행동을 한다는 의미도 전달할 수 있다.

매우 엄하게 처벌하여: 직역하면 “둘로 잘라”. 예수께서 이러한 구체적인 표현을 문자적인 의미로 사용하신 것은 아닌 것 같다. 이것은 엄한 처벌을 받을 것임을 뜻하는 표현이다.

위선자들: 마 6:2 연구 노트 참조.

이를 갈게: 마 8:12 연구 노트 참조.

미디어

성전 산의 돌들
성전 산의 돌들

예루살렘 서쪽 성벽의 남쪽 부분에 있는 이 돌들은 1세기에 성전 산에 있던 건축물의 일부였던 것 같다. 이 돌들은 예루살렘과 성전이 로마군에 의해 멸망되었다는 참담한 사실을 일깨우기 위해 이곳에 그대로 남겨져 있다.

올리브산
올리브산

올리브산(1)은 예루살렘 동쪽에 있는 둥근 봉우리들로 이루어진 석회암 산이며, 이 산과 예루살렘 사이에는 기드론 골짜기가 자리 잡고 있다. 성전 산(2)을 마주 보고 있는 봉우리는 정상의 높이가 약 812미터인데, 성경에서는 일반적으로 이 봉우리를 가리켜 올리브산이라고 부른다. 예수께서는 올리브산에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임재의 표징에 관해 설명해 주셨다.

겉옷
겉옷

“겉옷”으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히마티온인데, 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심라인 것 같다. 이 단어는 헐렁한 긴 옷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대개는 직사각형 천을 가리켰다. 이것은 입고 벗기가 쉬운 옷이었다.

무화과나무
무화과나무

봄에 무화과나무 가지에 잎사귀와 이른 무화과가 함께 나온 모습. 이스라엘에서 무화과나무 가지에 이른 열매의 눈이 나오는 시기는 대개 2월이다. 4월 말이나 5월이 되면 잎이 나오는데, 이것은 여름이 가깝다는 신호이다. (마 24:32) 무화과나무에서는 1년에 두 차례 무화과를 수확한다. 먼저 나오는 무화과 즉 이른 무화과는 6월이나 7월 초에 익는다. (사 28:4; 렘 24:2; 호 9:10) 늦은 무화과는 새로 자란 가지에서 열리며 수확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일반적으로 8월부터 익는다.

맷돌
맷돌

성경 시대에 사용된 맷돌 중 한 종류는 삽화에 나오는 것과 같은 회전식 맷돌이었다. 보통 여자 두 명이 함께 이러한 맷돌을 돌렸다. (눅 17:35) 두 여자가 마주 앉아서, 각자 한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맷돌 위짝을 돌렸다. 한 여자는 다른 쪽 손으로 맷돌 위짝의 구멍에 곡식을 조금씩 넣었고, 다른 여자는 가루가 맷돌 가장자리로 나와 맷돌 아래 깔아 놓은 받침이나 천에 떨어지면 그 가루를 모았다. 여자들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곡식을 갈아서 그날 먹을 빵을 만들 가루를 준비했다.